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에 위치한 보로부두르 사원은 세계 최대의 불교 사원으로, 그 구조와 조형에는 불교의 심오한 우주관과 깨달음의 여정이 정교하게 구현되어 있다. 8세기 샤일렌드라 왕조 시기에 건립된 이 사원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닌, 불교 철학과 미학, 우주관이 하나로 융합된 거대한 상징 구조물이다. 본 글에서는 보로부두르의 만다라 구조, 석불 배치, 불타정토 사상을 중심으로 그 상징성과 공간 해석을 분석한다.
만다라 구조를 통한 우주 구현
보로부두르의 전체 구조는 고대 인도 불교의 ‘만다라(Mandala)’ 형식에 기반하며, 이 만다라는 불교 우주의 축소판으로 해석된다. 사원은 정사각형의 기단을 중심으로 3단계의 세계로 나뉘어 있다. 하층부의 '카마다투(Kamadhatu)'는 욕망의 세계, 중간층 '루파다투(Rupadhatu)'는 형태의 세계, 상층부 '아루파다투(Arupadhatu)'는 무형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러한 수직적 상승 구조는 인간의 번뇌에서 시작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의 여정을 반영한다. 총 9층으로 구성된 이 사원의 입체적 배치와 중심탑 구조는 불교 우주론의 축인 '수메루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되며, 만다라의 시각적 구현체로서 기능한다.
석불과 부조의 상징적 배치
보로부두르에는 약 2,672개의 부조와 500개 이상의 석불상이 존재하며, 이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불교 교리와 수행 단계를 시각화한 것이다. 벽면의 부조는 자타카 이야기(부처의 전생담), 불전(佛傳), 율장 이야기 등을 포함하며, 참배자가 시계방향으로 걸으며 교리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석불상의 배치는 매우 질서정연하며, 각 층마다 불상의 수, 자세, 손모양(수인)이 다르다. 특히 상층부의 72개 탑 안에 안치된 석불은 전통적인 사유형의 자세로 앉아 있으며,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고요함 속에서 해탈의 경지를 상징한다. 이러한 배치는 물리적 공간을 영적 세계로 전환시키는 장치이며, 참배자의 내면적 변화와 깨달음을 유도하는 구조다.
불타정토 사상의 건축적 해석
보로부두르는 불타정토사상(佛陀淨土思想)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사원으로 평가받는다. 불타정토는 부처가 머무는 이상적 세계, 즉 불순함이 없는 깨달음의 장소로 여겨지며, 보로부두르는 그 상징체계를 공간적으로 풀어낸 예다. 상층부의 원형 테라스와 중앙의 대탑은 정토 그 자체를 의미하며, 이곳에서는 어떠한 조각도 존재하지 않고 단지 상징만이 존재한다. 이는 말과 형상조차 초월한 ‘공(空)’의 세계를 나타낸다. 참배자가 하층부에서부터 상층부까지 걷는 여정은 곧 ‘자아’를 비워내는 과정이며, 건축물 자체가 수행과 명상의 도구로 기능한다. 보로부두르의 이와 같은 설계는 단지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철저히 철학과 교리에 기반한 실천적 구조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건축, 조각, 철학이 완벽하게 융합된 불교 문화의 정수다. 그 구조는 불교 우주관을 눈으로 보고 걷고 체험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인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살아있는 수행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지닌다.